하늘의 만나
담임 목사님이 직접 작성하시는 성도님들을 향한 영의 양식!
이름을 공개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위험성
이름을 공개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위험성 고대세계에서 이름을 알려주는 행위는 관계를 맺는 친밀감의 표시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친밀감의 관계는 이내 하나님의 이름이 악용되거나 모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십계명 중의 하나는 인간들의 그러한 악용으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보호한다고 할 수 있다(출20:7; 신5:11). 그렇다면 우리 인간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름을 알려주는 행위는 친밀함을 갖게 한다고 했을 때 한 가지 문제점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러한 친밀함이 자칫 잘못하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이런 소지가 다분하다. 부부가 되기 전 서로 남남이었을 때는 오히려 관계가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부가 되고나면 어떻게 바뀌는가? 서로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태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시면서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아셨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요13장 16절-17절에서 한 가지 주의 사항을 주셨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주님께서는 정확하게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보셨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자칫 잘못하면 제자들이 주님을 우습게 볼 소지가 있었다. 주님은 철저히 그것을 경계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경고를 무시한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바로 가롯유다이다. 발을 씻으시는 주님을 우습게 본 것이다. 예수님을 마치 노예중 한 사람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할 때 그 자리에서 없었고 예수님을 팔기 위해 제사장에게 가있었다. 마치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 때 산 밑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해서 춤을 추고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인식되고 있는가?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경외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임로 살아지는 것임을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