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만나
담임 목사님이 직접 작성하시는 성도님들을 향한 영의 양식!
목동으로 남을 것인가? 왕으로 남을 것인가?(삼상17:23-40)
목동으로 남을 것인가? 왕으로 남을 것인가?(삼상17:23-40)
작은 일의 중요성에 대해 일본의 한큐철도 설립자 고바야시 이치조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신발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면 세상에서 신발 정리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세상은 당신을 신발 정리만 하는 심부름꾼으로 놔두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멋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25:21)” 고바야시 이치조의 명언은 일맥 성경의 말씀과도 일치한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나는 직장에서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가? 교회에서는 어떤 중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가? 혹여 마지못해 어쩔 수 없어서, 먹고 살기위해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교회에서 내게 부여된 직분을 사명감이 상실된 채 억지로 하고 있지 않은지를 살펴봐야 한다. 오늘 본문 속에는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이유가 들어 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목동에 불과했다. 그것도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 막내로서 그 아버지 이새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사람이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목동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가 목동이 되었는데 다윗도 이새의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약한 존재였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베들레헴에 찾아와서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며 이새와 자식들을 초청하였을 때 다른 자식들은 다 초청에 응했지만 다윗만큼은 양을 치느라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베들레헴으로 보내실 때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있다(삼상16:1).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무엘이 베들레헴으로 보냄을 받게 될 때 다윗은 아직 목동의 신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향하여 목동을 보았다고 말씀하지 않고 왕을 보았다고 말씀하신 다는데 있다. 이것은 다윗이 이미 하나님의 눈에 목동이 아닌 장차 이스라엘을 통치할 왕으로 비쳐진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일은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리기 전에 있었던 일이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보실 만한 일이 아직 보여지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바라보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의 어떤 모습이 하나님의 눈에 왕의 모습으로 비쳐졌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목동으로서 양을 칠 때 사자와 곰이 와서 양의 새끼를 물어 가면 끝까지 쫒아가서 사자와 곰을 대항해 싸우고 양을 구해온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맡은 일에 다윗처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고 있는가? 각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동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왕으로 남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아멘. 감사합니다.